지난 달 17일 한국으로 낭보가 전해졌다. 제46회 국제기능올림픽 귀금속 공예 직종에 출전한 조민성 선수가 은메달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부터 올해까지 총 28회 출전하여 금메달 15회, 은메달 5회, 동메달 5회를 수상했다.
실적을 봤을 때, 3차례 참가 때 이외에는 메달을 놓친 적이 없고, 메달을 딸 때마다 거의 금메달을 싹쓸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기능올림픽 귀금속 공예 직종에서 전통적인 강국으로 꼽혀 왔다.
한데 지난 17년, 19년 열린 대회에서는 연거푸 노메달을 기록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마저 노메달을 기록했다면, 기능올림픽 귀금속 공예 직종에서의 우리나라 의 위상이 크게 추락할 뻔 했다.
이에 조민성 선수의 은메달 수상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능올림픽 및 국내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제반 시스템을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수한 주얼리 인재를 양성하고, 주얼리 산업의 발전은 물론, 기능올림픽 귀금속 공예 직종 강국이라는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대안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 기능올림픽 어떻게 치러지나 기능올림픽 경기는 총 4일간 치러진다. 매일매일 한 개씩 과제물을 완성한 다음 마지막 날엔 그 4개의 과제물들을 하나로 조립하여 한 개의 작품을 완성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4개의 과제물 중 셋째 날에 주어지는 과제물이 최근 기능올림픽의 하이라이트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창의적 과제물이다. 다른 3개의 과제물들은 경기 시작 전날 도면이 주어지는 반면, 이 과제물에는 도면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선수 본인이 상상력에 의지하여 직접 도면을 그려서, 그 공백을 채워 넣는 게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기 방식은 이번 대회의 직전 경기인 45회 대회 때부터 전격 도입됐다.
그 전에는 대회 시작 60일 전 5개 과제가 공개되고, 30일 전에는 3개 과제로 압축된다. 그리고 대회 시작 2일 전, 추첨을 통해 하나의 문제를 선택한 다음, 그 문제의 30% 정도를 변형하여 문제를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전체 과제 설계도를 일괄 공개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런 경기 방식은 선수들의 총체적인 실력을 판가름하는 데에 크게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돼 왔다.
그래서 새로운 경기 방식은 선수들 각 개인들의 기능 숙달 정도는 기본이고, 선수들의 문제해결 능력, 디자인 실력, 창의성 정도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 올해 대회 전체 과업 지시서 내용은?
지난 달 12일 대회 시작 전날에 공개된 과업 지시서 내용은 압축하면 다음과 같았다.
“한 고객이 매장에 와서 주문을 했다. ‘중국,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그 추억을 주얼리에 담고 싶다. 전지 공예가 발전한 중국, 배우의 초상화, 새와 꽃, 풍경을 묘사하는 목판화로 유명한 일본 문화를 형상화한 주얼리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 주얼리 제품을 만들어 그에게 제공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지시문과 함께 3개의 설계도 및 관련 과제의 힌트가 될만한 사진들이 20여 장 공개됐다. 그 사진들은 물고기, 파도, 꽃 등과 관련된 사진들이었다.
이외에 주최 측은 매일매일 셋째 날의 ‘창의적 과제물’을 위한 도면을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과제도 같이 부여한다.
그래서 첫날에는 셋째 날 과제물을 구성하기 위한 4가지 소품들의 스케치를 하도록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그리고 두 번째 날에는 그 4가지 소품들 중 본인이 스스로 활용하고자 하는 두 개의 소품의 상세도를 그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의 시간 관리는 좀 더 복잡해진다. 그날그날의 과제들 이외에, 셋째 날 과제를 위한 도면을 그리는 작업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든 선수들은 전체 과업 지시문과 사전 공개되는 3개의 도면을 참고하여, 대회 시작 전날, 자신만의 전략을 짜게 된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을 지도해 준 각 나라별 국제지도위원(우리나라- 김용희 명장)의 조언을 받아 더욱 촘촘히 전략을 가다듬게 된다.
■ 조민성 선수, 경기 첫날 큰 실수를 범했지만...
“첫날 과제를 망쳤어요. 과제가 비교적 쉽다고 생각돼, 방심했던 것이지요. 시간 관리를 하지 못해 첫 과제물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과제물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 선수는 근성이 있는 선수였다. 그는 되도록 첫날의 실수를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아직도 3개의 과제물이 남아 있다는 데에 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 또한 셋째 날의 창의적 과제의 완성도 여부가, 전체 승부를 가릴 가장 핵심 과제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그의 도전은 더욱 치밀하게 전개됐다.
이미 그는 창의적 과제를 위한 밑그림으로 첫째 날 잉어와 파도, 꽃, 등불을 그려 놓았었다.
그래서 두 번째 날에는 모란꽃과 등불과 관련한 상세도를 그렸다. 등불은 중국 전지공예와 연관하여 착안한 것이었다.
첫날과 둘째 날, 이같이 차분하게 준비한 그는 드디어 셋째 날을 맞아,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만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이날의 과제는 도면을 정확히 완성하여 작품 제작에 들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지막 날 나머지 3개의 과제물들과 조립했을 때 과제물들 간에 틈이 벌어지거나, 어느 한 부위가 튀어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창의적 과제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윽고 세 번째 과제물이 완성됐을 때, 그는 어느 정도의 목적은 달성했다라고 스스로 평했다. 나름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날, 조 선수는 네 번째 과제물을 완성한 다음, 이미 만들어 놓은 3개의 과제물과 맞춰보았다. 다행히 아귀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조립하는 과정은 그에겐 그리 힘든 과정은 아니었다.
최종 완성물을 제출하면서, 나흘 동안의 열전 중 첫날 실수만 없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하지만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그 이후의 치열한 노력의 과정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 준비하는 과정부터 수상의 순간까지
조 선수는 어릴 적부터 주얼리 제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현석공예 조현석 대표)가 밤낮으로 주얼리 제품을 만드는 것을 접하면서 자라났다. 그리고 블록쌓기 같은 놀이들을 즐겨 했다.
그러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처럼 우리나라 최고의 주얼리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그 결과 그는 부천공고에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바로 전국기능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는 심화반 동아리에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아버지 또한 부산기능대회 금메달리스트이자, 전국 대회 동메달리스트 출신이었다. 이때부터 안팎에서는 과연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것인가 하고 주시하게 됐다.
이어 조 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치러진 전국기능대회(2019년)에서 동메달을 수상하게 됐다. 그리고 그 이듬해 11-12월에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렇게 되자 업계에서는 아들이 이제 아버지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게 됐다고 평하게 됐다.
그런데 2021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중국 국제기능올림픽 대회가 한해 후로 미뤄지게 됐다.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조 선수는 일단 진학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한국복지대학교 귀금속보석 공예과에 입학을 한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올림픽 출전 훈련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였다. 이후 올 10월 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고강도 훈련을 받아 왔다.
“사실 조 선수는 처음부터 기복이 별로 없었어요, 꾸준히 성실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선수였어요. 그래서 특히 창작과제 수행 영역이 매우 낯설고, 어려웠지만 집중적인 노력으로 잘 극복해 냈습니다.”
조 선수 지도를 담당한 김용희 국제지도위원의 말이다. 김 지도위원은 2010년부터 국제지도위원 및 기능올림픽 심사위원을 역임해 오면서 우리나라 국가 대표 선수들을 지도해 왔다.
이에 조 선수는 훈련장이 있는 서울 압구정동 부근으로 숙소를 옮기고 훈련에 임했다. 초기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요일만 쉬고 훈련을 했다. 그러다 경기 6개월 전인 지난 4월부터는 일요일도 가리지 않고 훈련을 진행했다.
“선생님께서는 일주일에 2개씩 과제를 완성하도록 하셨어요. 본 대회는 4일간 낮 동안에만 진행되지만, 저는 매일 저녁 10시까지 과제를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어요. 과제를 완성해서 가지고 가면, 선생님께서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시고, 또 다시 과제를 내 주곤 하셨어요.”
그런데 그 과제들은 본 대회 과제와 패턴이 똑같았다. 그래서 전체 작품의 중간 부분(창의적 과제)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과제가 주어졌고, 본 대회에서처럼 숙소에 와서까지 그 빈 공간 제작을 위한 도면을 그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매일 밤 1시-2시 무렵 잠들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는 아침 8시 훈련장 입소 약속을 거의 어긴 적이 없었다.
“10개월간 매월 8개씩 거의 80여개의 과제를 만들다 보니, 본 대회에서의 경기가 그리 어렵진 않았어요. 그 같은 연습의 과정이, 대회 첫날의 큰 실수에도 바로 기운을 회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이제 그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심화반에 들어가면서부터로 치면 굉장히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이제 그는 완전한 성인으로 탈바꿈했다.
“일단 대학 생활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그러면서 졸업 이후의 진로를 모색할 생각입니다. 계속 공부를 지속하여 강단에 서고 싶기도 하고, 산업 현장으로 진출할 생각도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아직도 앳된 소년의 모습이지만, 안으로는 굳은 강단과 열정이 엿보인다는...
이러한 그가 장차 사회에 진출하여 어렸을 적 꿈이었던 주얼리 분야 명장이 되고, 또 업계 발전에 기여하는 큰 일꾼이 되길 빌어봤다.
정이훈 기자
■ 인터뷰| 김용희 국제 지도위원 겸 기능올림픽 심사위원
열악한 여건 속, 무려 12년간 국가와 선수 지도 위해 헌신
재임 기간 총 6회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2회, 은메달 1회, 동메달 1회, 우수상(세계 4위) 2회의 값진 성적 거둬
“국내 기능대회와 국가 대표 선발전 과정에서의 평가방식이 국제기능올림픽 방식과 너무 다릅니다. 이로 인해 올해 올림픽 대회 훈련 과정에서도 그 점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김용희 국제 지도위원 겸 기능올림픽 심사위원은 지난 2010년부터 기능올림픽 국가대표 훈련을 직접 담당해 왔다.
그간 치러진 6번의 대회에서 금메달 2회, 은메달 1회, 동메달 1회, 우수상(세계 4위) 2회 의 성적을 거두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능올림픽 무대에서 매우 값진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김 지도위원은 2006년에 주얼리 세공 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바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더 국가대표 선수 훈련 지도의 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계속 국내 기능대회에서 과거 방식을 고수한다면,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의 입상은 더욱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기능올림픽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경우 이미, 비공개 과제 및 창의력 위주의 기능올림픽 평가방식을 국내대회에 도입했습니다. 그것은 대회 이전의 전체 학교 교육의 방향을 새로이 바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단순 기능훈련 중심의 우리나라가 갈수록 따라가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번 기능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조민성 선수도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10개월간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는데, 그 훈련 과정에 대해 “국가 대표 선수로 선발되긴 했지만, 처음 겪어보는 그동안 익숙하지 않았던 비공개 및 창의 과제 중심위주의 훈련을 따라가려니, 너무 힘들었다”라는 것이다. 이외에 김 지도위원은 업계가 잘 돼야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도 좋아질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업계가 활성화되면, 신진 꿈나무들의 업계 수혈도 활발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선수층도 더 두터워질 것입니다. 이와 함께 경쟁이 치열해져 선수 기량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문제는 갈수록 우리 업계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보니 범 업계 차원의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후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이런 상태에서 정부의 국가 대표 선수 훈련 지원도 원활하지 않아서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능올림픽 대회는 금 재료로 과제를 완성해야 합니다. 한데 이번 10월 올림픽 대회 훈련을 위한 금 재료 지원이 대회 직전인 9월에야 이뤄졌습니다. 이에 따라 그 이전 훈련 재료는 자력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니다. 선수 훈련 기간 식비도 재임 기간 내내 한 번도 정부 지원이 이뤄진 적이 없다. 이에 따라 지도위원이 직접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타 직종 같은 경우 형편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요리, 미용, 피부미용, 화훼장식 같은 직종은 국가 대표 선수에 대한 후원이 너무 많아서 넘쳐나는 업종도 많습니다. 그런 업종들은 업계가 크게 활성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무려 12년간이나 국위를 선양하고, 선수 지도를 위해 헌신해 온 김용희 국제지도위원에게, 업계를 대신해서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정이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