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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다시 익산귀금속보석단지의 부활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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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2,361회 작성일 19-04-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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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귀금속단지에 청년층 대거 유입…인력난에도 전망 밝아

40년 된 기술자들 포진, 역사 깊고 발전가능성 높다

익산시 귀금속보석 클러스터 전략 전면 재수정도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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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귀금속보석공업단지(이하 익산귀금속단지)의 부활은 가능할 것인가.

최근 익산귀금속단지 내 120여 개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귀금속보석도시의 부흥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기에 익산 권역의 각 대학들에서 배출된 젊은 피들의 수혈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익산시도 익산귀금속보석클러스터 구축산업을 중심으로 익산 귀금속산업단지의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이제는 이같은 양방향의 노력들이 접점을 찾아야 할 때라는 여론도 강하게 일고 있다. 이에 본지는 익산귀금속단지의 부활을 위한 다각적인 방향을 모색해 봤다.

◆ 익산시 귀금속보석클러스터사업은 적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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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는 2000년대부터 익산귀금속보석클러스터(이하 익산귀금속클러스터) 구축산업을 추진해 왔다. 익산귀금속보석클러스터 구축산업은 귀금속보석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시너지효과를 높이기 위한 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익산시는 2002년 보석박물관을 개관한 데 이어, 익산귀금속보석클러스터 구축 1단계사업(2008년~2012년)으로 귀금속보석전시판매센터인 주얼팰리스를 건립했다. 국비 52억, 도비 29억, 시비 69억원 등 총 150억원을 투입한 사업이었다. 주얼팰리스는 총면적 5.256㎡ 규모로 2010년 9월 개관했다.

또 익산시는 1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2년 86,000㎡ 규모의 보석가공단지 부지를 조성한 데 이어 2단계 사업(2012~현재까지)으로 예산 205억원을 마련해 브랜드 및 제조공정 기술연구 개발 등을 위한 아파트형 공장과 디자인센터 등을 건립하여 지난 2018년 초 개관하기도 했다. 현재 이 아파트형 공장에는 26실 중 4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한편 보석가공단지 중 귀금속제조업체에 매각하려던 일부 부지는 그동안 매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시는 애초 계획을 변경해 지난 2018년 이 지역을 보석마을 콘셉트로 계획을 탈바꿈시켰다. 이렇게 하면서 시가 개별 분양 필지 규모를 줄이자, 이 지역은 서서히 매각이 이뤄져 현재는 전체 14개 필지 중 13개 필지의 매각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다.

익산시는 이같이 보석박물관, 주얼팰리스, 보석가공단지에 이르는 왕궁귀금속보석클러스터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이 외에도 패션주얼리 유턴기업들을 유치해 삼기 패션주얼리클러스터를 조성하기도 했다. 현재 이 곳에는 9개의 패션 주얼리 업체를 비롯한 총 11개의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 꼬이고 있는 익산귀금속클러스터 사업과 대안 모색

현재 익산귀금속클러스터 사업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 되고 있다.

단적으로 아파트형 공장에 지난 해 반입된 제조업을 위한 각종 장비들의 문제가 이를 집중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시는 이같은 장비들을 매입하기 위해 약 6억 9천여 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장비들이 필요한 제조업체들은 왕궁지역에서 승용차로 약 15분여 거리에 있는 익산귀금속단지에 주로 몰려 있다. 따라서 이 장비들은 앞으로 아파트형 공장에 업체들이 어느 정도라도 입주하지 않을 경우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보석가공단지와 아파트형 공장 건립 과정도 문제다. 애초 이 단지들의 조성 계획이 수립될 때만해도 현재의 익산귀금속단지 제조업체들도 단지 조성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보석가공단지가 조성되면 모두 옮겨가자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익산귀금속단지 제조업체들의 입장이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우선 이들 업체들이 이전해가기 위해서는 입지와 경제적인 여건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실제로 조성된 보석가공단지와 아파트형 공장의 입지는 너무 좁았다. 집적 단지로서 역할을 하기에 처음부터 여건이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당장 현재 분양 완료된 보석가공단지는 13개 필지에 불과하다. 아파트형 공장에는 총 26개 업체가 입주할 수 있는 규모다. 그래서 익산귀금속단지에 몰려있는 120여개 업체들 중 반절 정도의 업체들도 입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 것이다. 더불어 분양가와 입주 조건도 부담이 적지 않았다. 분양가 및 입주 조건이 공장들을 이전하기에 문턱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이같은 문제들로 진즉부터 익산귀금속단지 제조업체들은 익산귀금속클러스터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으로 돌아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익산시는 이에도 불구하고 계속 애초의 계획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익산귀금속연합회 김영수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대안을 제시했다.

“지금부터라도 시는 익산귀금속단지 제조업체들이 익산귀금속클러스터로 옮겨올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세웠던 기존의 전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방향을 바꾸어 40여 년 이상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익산귀금속단지 업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자체 힘을 모아 이후에 유한회사 익산귀금속연합회 법인 발족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자구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익산귀금속단지를 최대한 활성화시키면서 같이 발전하는 방안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해서 현재의 익산귀금속단지가 활성화된다면 결국 왕궁 주얼팰리스 및 아파트형 공장, 그리고 보석가공단지 등도 자연스레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익산귀금속보석단지의 꿈 포기 못해

익산 귀금속 2030세대 가세하여, 제조공정 현대화 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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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한참 호황을 누리던 시기를 보내고 침체기를 걷고 있던 익산귀금속단지에 최근 새 바람이 불고 있다. 2~3년 전부터 인근의 원광대학교, 원광보건전문대학 등에서 양성된 귀금속보석 관련 인재들이 익산귀금속단지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캐드로 귀금속보석 제품을 디자인해서 3D프린터기로 출력을 하는 기술을 활용해 50여명 중 10여명은 창업을, 40여명은 취업을 해 일하고 있다. 귀금속제조기술의 첨단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청년들이 익산귀금속단지에 정착하게 되는 데에는 공단의 많은 토착 귀금속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업계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는 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4년 전 익산귀금속연합회(이사장 김영수)가 조직돼 익산귀금속산업의 부흥을 위해 나서고 있는 것에 고무적이었던 것이다. 또 이곳은 연마, 세공 등 모든 귀금속공정을 신속하게 완성할 수 있는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아침에 귀금속보석 제품 주문을 넣으면 저녁에 완성품이 출고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마케팅능력이나 조직력이 부족해 영세한 경영상태를 유지하는데 급급했지만 연합회가 조직되면서 앞으로 익산귀금속단지의 활로가 모색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연합회는 우선 판로개척 차원에서 귀금속단지 인근 호텔에 판매 매장을 오픈해 18개 업체들이 만든 제품들의 공동 판매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에는 주얼리의 역사를 체험하고 직접 주얼리를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형 보석축제도 개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익산귀금속단지가 귀금속산업의 산 역사임을 증명하고 고객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주얼리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이처럼 움직이는 익산귀금속단지를 함께 부흥시켜 보겠다는 희망과 비전을 갖고 익산귀금속단지에 진출하고 있다.

게다가 익산시가 조성한 아파트형 공장의 경우, 주변에 협업이 가능한 인프라도 구축돼 있지 않은데다 거리도 떨어져 있어서 왕래하기 불편한 점도 익산귀금속단지에 정착하는 계기가 됐다.

가승훈 익산귀금속단지 청년대표는 “우리나라 귀금속산업의 역사이면서 지금도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익산귀금속단지가 부흥하는데 작은 역할을 하면서 함께 발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캐드나 3D프린터를 다루는 친구들 외에도 세공이나 연마 등을 할 수 있는 친구들도 함께 정착해서 익산귀금속단지의 역사를 새로 쓰는데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익산귀금속단지의 역사

70-80년대 귀금속보석 수출시대를 열다

익산귀금속단지는 지난 1975년 수출특화산업으로 귀금속보석산업을 집단육성하기로 확정함에 따라 익산에 같은 해 1단지를 조성한 데 이어, 다음 해에는 2단지를 조성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익산귀금속보석산업은 공단 조성 초기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인조석 가공 등 연마분야에서 크게 발전을 이루게 됐다.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수출을 통해 상당한 호황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수출품이 세계최대보석 시장인 미국 합성석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수출한 테니스팔찌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테니스팔찌는 여자 테니스 스타 크리스 에버트가 경기 때 착용했던 팔찌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이 팔찌를 익산귀금속공단의 몇몇 업체가 애초 팔찌의 다이아몬드 대신 큐빅지르코니아를 세팅하여 수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큐빅지르코니아 팔찌로 당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익산귀금속단지의 몇몇 지도자들은 초창기부터 약 11년 동안 수출특화단지라는 이점을 이용해 수출에만 주력해 온 익산귀금속단지의 내수 활성화를 위한 귀금속판매센터 건립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1989년 12월27일 익산시 1단지 인근에 준공된 판매센터는 귀금속 제조공장의 제품들을 직접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최저임금의 상승 등으로 인건비가 인상되면서 가격경쟁에서 저임금 국가에 밀린 익산귀금속단지의 업체들은 열악한 생산환경과 수출 의존적인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1990년대 말부터 대부분 해외나 종로 지역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게 된다.

그리고 기술자들도 대거 일본 등 외국으로 떠나거나, 여타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긴 침체기를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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