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금속업계에 햇살 비추는‘고용환경 우수기업(5)’「와이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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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1,646회 작성일 20-02-27 10:37본문
‘꿈을 향한 기업’에의 끝없는 도전
직원들이 ‘이 회사는 내 회사다’라는 소속감으로 똘똘 뭉친 기업
와이스미스 박영철 대표는 1989년 처음 서울 남대문의 한 귀금속 제조업체에 입사했다. 그리고 이후 25년여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15년 이 회사를 설립했다.
“직원들과의 소통이 안될 때가 회사의 가장 큰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영인으로서 박 대표의 화두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일반적인 불황이다, 매출이 떨어졌다, 수금이 안된다와 같은 문제들은 그에게 있어서 언제나 부차적인 문제들일 뿐이었다.
“주얼리 제품의 핵심은 디자인과 세공 기술입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그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혼을 담지 않으면 좋은 디자인과 제품이 나올 리 있을까요. 그리고 디자인과 제품의 질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매출이 잘 이뤄질 수 있을까요. 수금이 잘 될 수 있을까요.”
전체 내부 직원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김진혁 실장도 한 마디 거들었다.
“디자인과 제품의 수준은 언제나 디테일에서 결정됩니다. 그런데 고객들은 어느 회사가 만든 제품은 끝내줘 라고들 얘기합니다.
그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직원들의 마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디자인이나 제품의 마무리를 할 때, 고객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서 손이 한번 더 갈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는 것입니다.”
1/3 규모의 여유인력 운용의 이유
이런 면에서 이 회사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세심하게 노력한다. 우선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업무 하중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그래서 여유 인력을 충분히 두고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이 연장 근로를 하지 않고도 업무가 여유있게 돌아갈 수 있다.
이같은 여유 있는 인적 구성은 회사의 연월차 제도 시행을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원하는 날에 휴가를 이용하려면 일정하게 대체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사는 고난도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임시로 알바를 쓰거나 기간제 직원을 고용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그래서 이같은 유휴인력 활용 시스템은 안정적이고 탁월한 제품을 내기 위한 이 회사의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인재들이 몰리다
아울러 이 회사의 인적 구성 수준은 매우 놀라울 정도다. 2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직원들이 절반 이상이다. 대표 포함 기능장만 3명이나 된다. 그러다보니 이 회사에서는 다른 회사에서 만들 수 없는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이같은 인재들과 같이 계속 일을 하려면 회사 차원에서도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업계의 관행과는 달리 이 회사는 진즉부터 근로기준법의 다양한 규정들을 회사내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4대 보험 가입, 연장근로 수당 제도, 휴가 규정, 퇴직금 제도 등을 일찍부터 적용해 왔다.
이외에 이 회사는 명절 때나 휴가 때에 소정의 수당이 지급되고 있고, 월 1회 팀별 회식, 년 1회의 직원 워크샵도 빠짐없이 진행하고 있다.
“네임펜 뚜껑이 열려 있네”
이러한 가운데 이 회사는 회사와 직원들간 높은 응집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직원들 서로간에 ‘이 회사는 진짜 내 회사다’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단적으로 이 회사 기업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을 들여다보자. 김 실장의 얘기다.
“작업을 하다가 무심코 네임펜 뚜껑을 닫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면 지나가는 직원이 한마디 해 줍니다. 뚜껑이 열려 있네.
이렇게 서로서로 내 회사다 하는 자세로 일하다 보니까, 회사 운영이 전체적으로 생산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 실장이 한 마디 더 했다.
“만일 지난 달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회의에서 서로 얘기가 나옵니다. 더 열심히 만들자. 그렇다보면 제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고, 제품의 하자도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되지요”
이제 이 회사의 노동 친화적 기업 문화가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선순환 구조로 확실히 정착해가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공장 맨 바닥에서 잠자던 시절
그런데 이러한 기업문화로 발전해오기까지에는 이 회사 박 대표의 어렸을 적 경험을 따로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는 워낙 어려서 공장에 들어왔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따로 기숙사가 없었던지라 일 끝나고 공장 맨 바닥에 이불을 깔면 잠자리가 되는 식이었다.
그러한 공간에서 10여 명의 공장 형들과 숙식을 같이 하면서, 그는 굳은 심부름은 혼자서 다 담당해야 했다. 그리고 일을 못한다며 일 끝나고 맞기도 엄청 맞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제나 꿈을 잃지 않았다. 그리하여 밤낮없이 열심히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그는 마침내 지난 2011년 귀금속 분야의 기능장으로 우뚝 서게 된다.
바로 오늘의 기업을 일구어 오기까지에는 그의 남다른 각고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어렸을 적 공장과는 정반대의, 꿈의 직장을 향한 도전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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