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황갑주 명인의 『귀금속보석전승공예 입문 70주년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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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229회 작성일 24-10-10 21:48본문
“70년간의 전승공예 혼신의 역작들, 한눈에 일별”
10월 15일(화)부터 5일간, 용산구청 지하 2층 ‘용산 아트홀’’에서
『한민족 5천년! 전통의 멋과 맥을 잇는다!
저전 황갑주, 귀금속보석전승공예 입문 70주년 회고전』이 열린다.
10월 15일(화)부터 19일(토)까지 용산구청 본관 지하 2층 ‘용산 아트홀’’에서 전시된다.
이번 회고전에서 황갑주 명인(85)은 지난 70년간 외길 인생을 바쳐 제작해 온, 전승공예 작품들과 신변 장신구, 그리고 그가 유일하게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문자 투각 작품 등 총 350여 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사진 1 비녀와 노리게 등 장신구/ 사진 2 고려청자를 모티브로 만든 순은 금부쌍용화병/ 사진 3 백제시대 부여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 재현 작품/ 사진 4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탁은잔을 재현한 작품/ 사진 5 고려시대 사리장엄구 재현 작품
15살부터 이어진 외길 인생
입문 70주년을 맞아 회고전을 여는 황갑주 명인은, 1939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15살 되던 1954년에, 순천 보석당 세공 보조공으로 귀금속보석업계에 입문했다.
이후 70년간 ‘전승 공예 재현’이라는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그의 작품 세계를 꿰뚫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정신은 백제 왕흥사지 목탑에서 발굴된 금은동 사리함 3종을 재현한 작품들을 포함해, 그의 모든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금은동 사리함 3종의 경우, 금과 은으로 된 사리함에는 문양이 없었고, 동 사리함에만 백제 27대 왕인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새긴 문구가 표기돼 있었다.
황갑주 명인은 이 유물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세 개 사리함 모두 은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3종의 사리함 작품에 연화문과 여의문, 일주문, 반야심경 등의 전통 문양을 새겨 창작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이 창조한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탁은잔을 재현한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법고창신의 정신이 엿보인다.
이 유물을 재현하기 위해 그는 우리나라 전통 기법인 돋움질, 투조(금속판의 일부를 끌이나 톱으로 도려내고, 그 남은 부분을 무늬로 나타내는 조금 기법) 등의 기법들을 활용했다.
이 작품은 현재 익산보석박물관에 영구보전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구현하는 작업은 정말 혼신을 불어넣지 않으면 안된다.
앞의 금은동 사리함 3종을 재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먼저 은으로 만든 사리함 모형에 새겨넣을 문양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작품에 혼신을 다하다
그런데 황 명인이 그리는 밑그림은 일반적인 그림과는 차원이 다르다. 워낙 섬세하고 좌우 위 아래 간의 균형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보인다. 마치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완벽하기 그지 없다.
겉면에 밑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용기의 안쪽까지 밑그림을 그리기도 해,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이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영험한 동물로 잘 알려진 린봉구룡(기린과 봉황과 거북과 용), 사군자인 매란국죽(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연화문(연꽃무늬), 반야심경 등 옛 시절 많이 그렸던 전통적인 무늬를 많이 그려넣는다.
이렇게 완성된 밑그림에 정의 날 끝을 대고, 타각망치로 일사불란하게 내리치는 방법으로 밑그림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 과정에서 용의 섬세한 비늘과 당장이라도 요동칠 듯한 발톱, 대나무의 곧게 뻗은 줄기와 연꽃의 단아한 꽃잎 등의 문양들이 개성 있고 생생하게 살아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금은동 사리함 3종 유물을 구현하기 위해 꼬박 10개월의 기간을 밤낮으로 매달렸다고 한다.
이번 회고전은 이와 같이 그가 평생을 두고 재현해 온 전승공예 작품들을 한눈에 일별할 수 있는 귀한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정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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