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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간 특별 인터뷰 | 한국여성주얼리협회 이향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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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949회 작성일 23-07-28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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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발전의 큰 획 그은, 중요한 이정표 역할 담당

26개국 영부인들 관심 끈 주얼리 디자인관 개설 및 (사)한국귀금속보석디자인협회 창립 등 큰 성과 남겨 


평생을 주얼리 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한국여성주얼리협회 이향숙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26세에 한국 여성 최초로 미국 GIA 산타모니카 본교 전 과정을 졸업 했다. 

그 후, 사단법인 한국귀금속보석디자인협회 창립, ‘한국주얼리페어’ 전시회로 이어진 ‘성남국제주얼리페어’ 전시회 개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국 금속공예 및 주얼리 디자인의 오늘, 100인' 전시회 개최 등 하나같이 업계 발전의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담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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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주얼리협회 이향숙 회장에게는 ‘주얼리 업계의 첫 번째’라는 수식어가 매우 자연스럽다. 

이 회장은 부산 신라대학에서 금속공예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미국 GIA의 GG과정을 비롯, 디자인, 세공, 주얼리 디스플레이 과정까지 모두 섭렵했다. 덕분에 졸업할 때는 한국 여성 최초로 2개의 GIA 졸업장과 5개의 자격증이라는 놀라운 성과물을 갖고 귀국한다. 
이 회장은 이후 1990년 창립한 ‘보석세계(현재 오뜨클라쎄)’라는 소매 매장을 운영하면서, 1992년부터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보석 강의를 맡게 된다. ‘비싼 보석, 제대로 알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시작된 이 강의는, 이후 8년 동안이나 지속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이 강의는 백화점업계 주얼리 강의의 효시를 이룬다.  
그리고 한양대 금속공예디자인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그는 이화여대, 국민대, 원광대, 서울과학기술대 등에서 보석학 일반, 디자인, 브랜딩 과정을 가르쳤다. 

26개국 영부인들의 뜨거운 관심

이 회장은 2000년 그 동안 친목 모임 형식으로 운영되어오던 한국보석디자이너협회를, 정식 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도록 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그리고 이 법인의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마침, 이 무렵 정부는 아셈(ASEM)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26개국 정상들 영부인들이 관람하게 될 보석 디자인관을 꾸려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준비 기간도 촉박하고, 막 출범한 사단법인의 조직력도 매우 취약했다. 하지만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많은 어려움 속에 개장한 보석 디자인관이었지만 성과는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영부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전시관으로 부각된 것이다. 
각 참가국들의 주얼리 테마들을 반영하여 만든 주얼리 작품들이 영부인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사치품이네, 밀수품이네 하면서 언제나 찬밥 신세였던 한국 주얼리 제품들이, 영부인들 사이에 그 진면목을 드러내는 첫 무대였다. 

‘성남국제주얼리페어’ 전시회 ‘성료’

업계와 협회의 역량이 입증되자 이곳저곳에서 제안이 이어졌다. 그다음 해에는 성남시에서 50여 개 국가가 참여하는 세계 디자인 총회(ICSID)가 열리던 해였다. 디자인 업계의 UN 총회라고 할 만큼 비중 있는 행사였다. 주최 측은 이 행사장에서 ‘성남국제주얼리페어’ 전시회를 준비해 달라는 제안을 보내왔다. 
신생 협회 입장에서는 이 역시 과중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협회는 회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시회장은 관람객들 사이에 큰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성남국제주얼리페어’는, 그다음 해부터 매년 열리게 된 서울 코엑스의 ‘한국주얼리페어’ 전시회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이 회장은 이 같은 공로를 높게 평가받아, 2002년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되었다. 

미국 내 한국문화원 개설 계기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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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지도자로서 그의 역량이 세계 속에서 또다시 입증된 것은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국 금속공예 및 주얼리 디자인의 오늘, 100인' 전시회 때였다. 사실 한국 주얼리 작품들 포함 공예 작품의 외국 전시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데 이 회장은 한국의 기라성같은 공예 분야 원로들을 포함한, 한국의 공예 및 주얼리 대표 작가들의 출품을 이끌었다. 그렇게 치러진 전시회는 현지 관람객들로부터 최고의 관심을 받게 됐다. “한국 공예 및 주얼리 작품‘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보기 드물게 호평을 받게 된 이 전시회는, 그 다음 해에 미국에서 또다시 앵콜 전시회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여성협회 초대로, 한국대사관 코러스하우스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이 같은 앵콜 전시회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자, 이후 현지 대사관은 이를 계기로 워싱턴 DC 에 한국문화원을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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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계 진출의 거점 마련

평생 업계 발전을 위해 힘써온 그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그는 2015년 업계 여성 리더들과 함께 한국여성주얼리협회를 발족하게 된다. 세계여성주얼리협회(WJA)의 한국측 파트너 단체인데, 이 협회는 미국, 이태리, 인도 등의 나라에 발족돼 있다.
그중 미국협회가 가장 활발하다. 미국의 12개 곳에 지회가 구성돼 있다. 
이 회장은 이같은 미국협회와 손잡고, 이들이 관여하고 있는 미국 내 주얼리 전시회에 한국 유수의 디자이너들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LA와 뉴욕, 파리는 세계 패션 진출의 3대 거점입니다. 이 중 우리는 미국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브랜드들이 세계적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이를 통해 K-주얼리가 K- 팝, K- 드라마의 연장선에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회장과 범 업계의 노력 속에, 우리나라에서도 꼭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속속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이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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