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보석세공박물관 「석담」을 가다 4, 설립자 최팔규 회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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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1,038회 작성일 22-03-18 15:52본문
“주얼리 제조업체들로부터 받은 만큼, 보답하는 건 당연!”
최 팔규 회장, “박물관 건립, 그 연장선... K-주얼리가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도록 계속 기여할 터”
「석담」황금보석세공박물관은 익산의 보석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 주얼리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 귀중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 갈 것으로 보인다.
사재를 털어 이 같은 박물관을 건립한 최팔규 회장을 만났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주얼리 정련업체인 삼덕금속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의 여러 공간들 중 가장 최팔규 회장의 손때가 절어 있는 곳은 지하 1층 황금관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자신이 갖고 일했던 물품들을 모아, 금, 은, 플래티넘, 파라듐 등 각종 주얼리 원자재들을 정련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놨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같은 정련 작업은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각종 금속을 녹이는 촉매제로 수은이나 염산, 질산, 청산가리 같은 유독성 물질들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물질을 녹이는 과정에서 독성이 강한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한 공기를 흡입하게 되면 잘못하면 때로는 생명을 잃거나, 사지 마비와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당시에는 공장에 제대로 된 집진 시설 하나 갖추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다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지요. 선배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유독성 공기가 뿜어져 나올 때에는 1-2분 정도는 숨을 참고 작업을 하는 거죠, 그 다음 밖에 뛰쳐나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들어가서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최 회장의 가슴 부분과 턱 아래 목 부분에 아직도 생채기가 있었다. 수은은 몸에 들어오면 배설이 되지 않는다. 피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피부 밖으로 간혹 배출이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심한 가려움증을 경험하곤 한다.
그렇게 해서 생긴 상처들이 흉터들로 남아 있는 것이다.
초교 졸업 후 농사짓다가 상경
최 회장의 고향은 전남 영암이다. 4남 3녀 중 6번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을 못하고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18세에 상경하여 서울 왕십리 소재 영세한 정련업체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장 숙소 방바닥은 온통 금이 가 있었죠. 그래서 연탄을 피울 수 없었어요. 100% 연탄 가스 중독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통나무를 연료로 사용했는데, 그걸 태울 때마다 방안에 얼마나 연기로 가득 찼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죠.”
그런 와중에도 그는 성실하게 일했고, 공장 사장 뿐 아니라, 고객들로부터도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됐다.
“공장에 들어온 지 16년 만에 공장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독립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일감을 주면 회수되는 금의 양이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던 거예요. 그래서 계속 일감이 몰려들게 돼 회사가 점차 커질 수 있었지요.”
귀금속 정련업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얼리 제조업체들로부터 일감을 받게 된다. 금 세공 업체의 카펫이나, 작업용 면장갑, 폐수 등에 산재해 있는 금을 회수하는 작업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업계에 대해 언제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30년 전 박물관 건립 꿈 이뤄내
“주얼리 업계로 인해 성장할 수 있었으니, 당연히 업계로부터 받은 것을 되돌려 줘야죠”
그는 언제나 업계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뭔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2010년 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가 운영해오던 홀마크연구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큰돈을 투자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홀마크연구소는 회원사로 가입한 제조업체들의 금 함량을 제대로 측정해 주는 기관이다. 그렇게 해서 제조업체들의 금 제품이 고객들로부터 신뢰감을 얻을 수 있도록 힘쓴다.
“30여 년 전부터 박물관 건립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업계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던 거죠.”
이 후에도 계속 박물관에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각 영역을 더욱 세분화하고, 깊이를 더해나갈 계획이다.
“예를 들면 분석 분야만 해도 과거에는 그러한 분석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신라시대와 같은 옛날에는 또 어떤 방식이었는지 그러한 과정들을 고증하여 재현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업계가 더 발전해 주얼리 분야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업계의 매출과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선진화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함량이 엄격히 지켜지고, 제품마다 제조기업의 로고가 찍히고, 그래서 고객들도 믿고 살 수 있는 관행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우리 K-주얼리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길 빕니다. 이를 위해 저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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