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한국 주얼리 산업 100년사」 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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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484회 작성일 22-12-12 12:21본문
화보로 보는 100년사
100년사에는 업계의 발전 과정을 단번에 알 수 있도록 하는 귀한 사진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그 중 엄선하여 몇 개만 소개한다.
광고에서는 “대대적 대할인 세모(연말) 대매출”이라는 제하에, 상인이 회중시계(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시계)를 들고 익살스럽게 자신의 매장(촌목시계포)을 선전하고 있다.
손목시계와 당시 유행했던 고마루 반지(중간 부분이 볼록 튀어나온 반지)와 양장 반지들 그림들이 실려 있다.
“다이아, 금시계 기타 각양각색의 진기한 제품들을 특별히 진열해 놓았으니, 속히 오셔서 보세요”라며 홍보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금모으기 합의서
우수사 김평수 회장이 보관해온 ‘금 모으기 합의서’ 사진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금 모으기 운동을 업계에서 처음 제안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1만 5천여 개의 금은방에서 3.75-37.5g씩 수거하여 수출하자고 제안했다. 이로써 일단 나라부터 살리고, 또 그 과정에서 한낱 사치품으로 인식돼 오던 당시 금은방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업계 일각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알고 지내던 KBS 기자에게 이런 취지의 제안을 했다. 그러자 KBS는 주택은행, 고려아연, 대우종합상사 관계자들을 한데 모으게 된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해서 KBS는 홍보, 주택은행은 수집창구, 고려아연은 정련, 대우종합상사는 수출, 우리 귀금속업계는 감정 및 제반 실무 진행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업무 분장이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당시 전국 350만 명의 국민들이 참여하여, 230톤에 이르는 금을 수거하는 거사가 이뤄지게 된다. 그래서 22억 달러의 외화를 조달하여, 조기에 IMF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우리 업계가 나라를 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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