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사진업계 장인을 만나다 | 「이호스튜디오」 이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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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1,439회 작성일 20-06-14 23:18본문
영롱하게 빛나는 주얼리 제품들! 더 빛나게 하는 사진 인생!
중학 시절 때부터 잠시라도 사진기를 놓아본 적이 없다는 이호 작가의 인생 이야기
“특이하게도 초딩 때부터 사진이 넘 신기했고, 나만의 카메라를 갖고 싶어 했었어요.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중학교 때 그 운명(?)적인 나만의 카메라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후 그는 가는 곳마다 언제나 카메라를 손에서 떼어 놓는 법이 없었다. 버스 안에서도, 걸어 다니면서도 시간만 나면 ‘어떻게 찍으면 좋은 사진을 찍을수 있을까’만 골똘히 생각하면서 다니곤 했다.
또한 시중에 나와 있는 사진집을 접하기라도 할양이면 자기가 생각해오던 사진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 하나의 사진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나이와는 다른 좀 특이한 습관이었다. 그러면서 돈만 생기면 필름을 사거나 사진 인화하는데 다 털어 쓰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학업을 마치고 지인소개로 충무로 사진 스튜디오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1980년대 초반 ‘스튜디오K’라는 회사에 입사를 할 수 있게 됐지요. 그런데 이 회사는 무역협회와 같은 우리나라의 해외 수출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기관들로부터 해외수출용 상품의 카탈로그를 수주하는 회사였었어요.
그러다보니 이 곳에서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모든 품목들의 다양한 사진 촬영 기법들을 섭렵할 수 있게 됐지요.”
그러면서 그는 20대 중반부터 일찍이 정식 사진 기사로 인정을 받으면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직접 소화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85년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2년 뒤인 87년, 정식으로 충무로에 ‘이호스튜디오’를 열게 된다.
이 후 현재까지 그가 진행해온 프로젝트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조선왕조 500년사, 삼성중공업, 한전, 볼보 등 그룹사들의 사보집, 문화재청의 국가 등록 문화재 촬영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직접 담당하게 됐다.
그러던 중 종로 예지동 ‘다보 귀금속’ 카탈로그 촬영을 계기로 종로 귀금속 업계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래서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명성이 높았던 제모피아, 종금사, 금석, 거북사, 금당, 성금공예, 범한골드, 펠리체, 피닉스크라운 그리고 시계 브랜드 중에서는 오리엔트, 로만손 등 업체들의 카탈로그 촬영을 도맡아 하게 됐다.
한 때 스튜디오 규모가 최고로 커졌을 때는 직원이 14명이나 되기도 했다. 그 때는 엘지, CJ 홈쇼핑, 다이너스 클럽 등 홈쇼핑업체 카탈로그들을 비롯해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했을 때였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바뀌게 됐어요. 내가 너무 상업화가 되고 있지 않나. 사람이 갈수록 황량해지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마음 먹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찍고 싶은 사진 위주로 해서 찍자.”
그에게는 그 누구도 꺾지 못하는 한 가지 고집이 있었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끝까지 촬영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 사진들은 어느 순간 그의 분신처럼 살아 움직이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 된다.
앞으로 이같은 사진 인생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는 없다. 종로에서만 자그만치 17년의 세월을 함께 해 왔다. 그래서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서서히 자신의 사진 인생을 이어갈 사람을 찾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한다.
아울러 그는 종로에서의 삶이 다 하기 전에 꼭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 주얼리 제품을 찍는데 효율적인 장비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다. 요즘도 필생의 역작을 남기기 위해 틈만 나면 그는 각고의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특히 주얼리 제품을 찍을 때에는 만든 이의 마음을 읽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의 마음이 빛이 되어 제대로 형상화되도록 저 또한 혼신의 노력을 다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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