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 주얼리 음성화 현장과 대안 ①, 어느 공장 사장의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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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6-09-17 11:09본문
“우리도 제발 세금 낼 환경 좀 만들어 주세요”
기획재정부·국세청 관계자들 앞에서 하소연
대한민국 금 산업, ‘왜 정직한 사람이 도리어 손해 보는 시장’이 되었나
제조업체·총판·소매점 모두 “나만 자료 거래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절규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 있을까.
시간은 2023년 10월 13일 오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얼리 업계 역사상 처음으로,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의 귀금속 제조업체와 소매점을 직접 찾았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우리는 월 매출이 10억 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세금계산서는 1억 원도 못 끊습니다.”
“직원들 급여도 실제대로 신고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은행 대출도 안 나옵니다.”
대한민국 귀금속 산업의 심장, 종로.
이곳에서 정부 관계자들 앞에 쏟아져 나온 이야기는, 단순히 세금을 내고 안 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금을 내려고 해도 낼 수 없는 시장. 그래서 전 업계가 탈세 천지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시장.’
이것이 대한민국 현재 금 산업의 민낯이었다.
3년이 다 지났는데, 그날의 종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가 현장에서 들은 그 절박한 호소는, 아직껏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방치된 음성화의 상처는, 끝내 2025년 불량금 사기 사태로 곪아 터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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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1월 16일 오후 2시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에서, 기획재정부 관계자들과의 제2차 간담회가 열렸다.
■ “월 10억 매출인데, 신고는 1억도 안 됩니다”
2023년 당시 한 제조업체 대표의 말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직원 20여 명을 두고, 월 10억 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부가세 신고는 1억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마저도 거래처에 사정하고 또 사정해서, 겨우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은 결과라고 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종로 제조업체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오히려 답답함을 호소했다.
제조업체들이 자료 거래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로부터 제품을 사가는 도매총판들이 먼저 계산서를 끊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총판은 또다시 소매점들로부터 계산서 발부를 거절당하고 있다.
결국 시장 전체가 이미 음성화라는 잘못된 틀 안에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구조에 꽁꽁 묶여 있다는 설명이었다.
■ “직원의 사내 금 절도 행위 드러나도, 큰소리 한번 못 칩니다”
음성화의 피해는 세금에서 끝나지 않았다.
신고 매출이 적다 보니 직원들의 급여 역시 실제보다 적게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4대 보험 가입도 일부 직원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못하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대표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씁쓸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귀금속을 다루는 공장이다 보니, 간혹 공장 안의 금이 사라지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그런데 특정 직원의 혐의가 드러나도, 함부로 뭐라고 말을 못 한다는 것이다.
“신고하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도리어 대표 본인이 꼼짝 못 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7년 동안 세 차례나 이런 협박을 받았고, 결국 위로금을 건네며 조용히 회사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진실과 거짓이 정면으로 뒤집어져 있는 현실, 공장 사장들이 모이면 다들 한 목소리로 자조한다.
“남 일이 아니지.”
이런 판국에 어떻게 한국의 주얼리 업계가, 서로 치열하게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발전에 발전을 다해 나간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고대부터 금관 제조 기술이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 K- 주얼리가,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 “자본금은 5천만 원인데, 공장에 깔린 금 자산은 10억 원”
더 큰 문제는 금융이었다.
공장에는 항상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금이 보관돼 있다.
주얼리 제조 공정마다 제조 중인 금 원자재가 산재해 있다.
하지만 거래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이를 회사 자산으로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은행은 재무제표를 보고 대출을 심사한다.
그러나 재무제표에는 실제 사업 규모가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다.
사업은 성장했지만, 장부는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
이 모순 때문에 필요한 자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하고, 위기가 닥치면 버틸 힘도 부족해진다.
대표는 “개인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신고되고 있어서, 동사무소에 가면 극빈자 취급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금융거래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문제는 제조업체만이 아니었다
정부는 현장을 둘러보며 또 하나의 사실을 확인했다.
음성거래는 제조업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조업체는 총판 때문에, 총판은 소매점 때문에, 소매점은 소비자 때문에 세금계산서 거래나 카드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된다.
소비자 10명 중 7~8명은, 부가세 10%가 붙지 않는 현금 결제를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카드 결제만을 요구하는 소매점은 점차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소매점은 자료 없는 거래를 요구하게 되고, 총판과 제조업체도 결국 같은 구조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음성거래는 어느 한 단계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전체가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악순환의 도가니라고 볼 수 있다.
■ “정직한 업체부터 무너집니다”
이날 만난 한 소매점 대표의 증언은 제조업체 대표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는 사업 초기 모든 거래를 정상적인 부가세 거래로 운영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같은 제품이라도 현금거래를 하는 경쟁업체보다 가격이 10% 가까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비자는 더 싼 곳으로 이동했다.
“정직하게 하면 먼저 손님이 떠납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도 버틸 수 없습니다.”
그는 “이 구조에서는 누구도 혼자 정상적인 거래를 계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이것은 탈세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의 문제다
이번 현장조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금 산업의 음성화는, 단순히 일부 사업자들의 탈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거래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오랫동안 고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최근 불량금 사기 사태, 음성화 관행에 신고조차 제대로 못 해
이러한 고질적 음성화 관행은, 지난해 7월 불량금 사기 사태로 비화했다.
종로 이곳저곳의 결제금에서 텅스텐과 같은 이물질이 발견됐다.
겉으로 보기엔 순금인데, 잘라보면 이물질이 발견되는 것이었다.
이 사태는 업계에서 제대로 신고도 못 하는 사이에 급격히 확산됐다.
피해자가 올해 1월까지도 보고될 정도로 피해 기간이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여태껏 수사조차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피해자 수가 부지기수이고, 피해액도 수백억 원대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은 대놓고 신고를 제대로 못했다.
열이면 열, 피해자 모두가 음성화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중 누구 하나는 떳떳하다 하더라도, 그조차 그 금을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공개하기가 어려웠다.
잘못하면 거래처가 다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금은 제2의 화폐다. 그런데도 그 결제금에 제조사 마크가 전혀 찍혀 있지 않아 피해를 더 키웠다.
한국은행 직인이 찍히지 않은 화폐가 마구 돌아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이 사기범만 살판났다.
백주 대낮에 대규모 사기를 치고도 법망을 비웃으며 업계를 활보하고 있다.
2015년 무렵에도 비슷한 사기가 벌어졌는데, 이번에도 양상이 똑같다.
업계의 음성화 관행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이 같은 불량금 사태는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26년 대한민국 주얼리 업계의 처절한 현실이다.
■ 정직하게 사업해도, 경쟁력 잃지 않는 시장을!
정부는 그동안 ‘탈세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해 왔다. 그러나 현장은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 주얼리 업계를 왜 방치하고 있나.”
그리고 “정직하게 사업해도 경쟁력을 잃지 않는 시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음성거래는 아무리 단속을 강화해도 일회성 대응에 그칠 뿐이다.
토양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건강한 싹이 제대로 자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금 산업에 이제 필요한 것은 단속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정상적인 거래가 오히려 경쟁력이 되는 시장 구조를, 점차 새로이 구축해 나가는 길만이, 구조적으로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끊어낼 유일한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탐사기획 제2부”에서는 종로에 왔다 간 정부 관계자들이, 어떤 결과를 내놓았는지, 그 후일담을 소개한다.
정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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